농부의 피

시리즈

작가 소개

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양봉을 하고 책을 만들고 소설을 쓴다.

작가의 말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기 5년 정도 전에, 혼자 전국 기차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 여행 장소로 할머니 할아버지네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틀 정도 묵으면서 함께 온천도 가고 논 구경도 하다가 밤에는 일찍 잠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왜 그렇게까지 서둘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해가 뜨기도 전, 새벽 첫 차를 예매해 두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혼자 어둡고 작은 버스 터미널에 앉아 있는데 버스 대신 할아버지의 군청색 포터가 정류장에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 왜 오셨느냐고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그냥 궁금해서 와 봤다고 하고는 바로 다시 시동을 걸어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즈음 오래된 포터는 반쯤 맛이 가서 가다 말고 길 한가운데 멈춰 선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를 않았다. 터미널 앞에는 가로등도 없었고 포터는 라이트도 다 꺼져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이렇게 어두운데 버스라도 들어오면 너무 위험해! 어쩔 줄을 모르고 엉거주춤 서 있을 때 포터가 가까스로 다시 움직였다. 나 어렸을 때에는 포터 짐칸에 타 논까지 달리며 바람을 맞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은 여행길의 마지막 코스로 고른 장소였지만,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건 여행이 아니야……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