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 리포트

블랙번에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쓰레기 매립지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자녀가 블랙번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부모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병든 자식들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내세워 그런 해로운 환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외쳤다. 난지도나 선유도처럼 흙으로 덮든지 아예 쓰레기를 다 파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수출하든지 하라는 게 그들의 요구 사항이었다.

정치인들은 난색을 표했다. 사람이 사는 지역에 유해 시설을 들여놓은 것도 아니고 유해 시설에 사람이 자발적으로 살러 들어간 다음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법적으로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것은 자문할 필요도 없이 당연했다. 권리란 비석치기와 유사한 것이라서 먼저 있는 돌을 쳐 낼 때나 따지는 것이지 자기 혼자 거꾸러진 돌에다가 하는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누가 감히 성난 부모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걸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입장을 표하긴 했으나 실상 진행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행령은 행정부에 계류했고 패스트트랙 입법이 발의되기는 했지만, 무단 투기된 쓰레기처럼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만 그 양쪽 사이에 끼어 곤란한 고무줄놀이를 지속할 뿐이었다.

한편 어떤 일이든 끼어들어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보타닉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는 샤오밍 씨는 밀려드는 문의에 못 이겨 블랙번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녀는 식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닌 희귀한 샤먼이었다. 요즘 시대에 샤먼으로 어떻게 먹고사냐 싶겠지만 보타닉 커뮤니케이터의 벌이는 역사를 통틀어 지금이 가장 좋다고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땅을 사려는 사람들은 상담료가 얼마든 거의 신경을 쓰지 않더군요.”

식물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적어도 식물에게 휴대전화 쓰는 법을 가르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었다. 블랙번을 한 바퀴 둘러본 샤오밍은 의뢰인들에게 그 땅은 투자처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전송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블랙번이 검은 이유는 거기 사는 생물들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흑사라고 불렀다. 그건 여러 종으로 이루어져 함께 사는 무리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인 것 같았다. 그들은 블랙번 주변에 살던 식물들의 자손이었다. 흔히 식물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데, 식물이야말로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유전자 변이를 겪는다. 그들은 모래와 함께 살면서 모래에 붙은 먹이를 빨아 먹었다. 모래에 붙은 양분으로 살아가는 것들인 만큼 자손들을 멀리 퍼뜨려야 하기에 버섯처럼 포자로 후손을 남겼다. 어쩌면 피부에 붙은 포자들이 블랙번에서 아름다운 사진이 찍히는 이유 중의 하나였을 수도 있다고 샤오밍은 덧붙였다.

흑사가 블랙번 해변에 터를 잘 잡았다고 여길 무렵 인간들이 나타났다. 인간들은 훌륭한 번식의 매개체이긴 했다. 인간의 피부에 붙은 포자들은 해변을 넘어 더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들은 흑사를 밟아 죽이는 침략자이기도 했다. 밟힌 흑사는 터져 죽는다. 소화를 위한 효소들이 모래를 밟을 때마다 공기 중에 흩날렸다. 그게 사람의 피부를 녹일 정도의 유독성이 있는지까지는 샤오밍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굳이 해변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그 덕분인지 그녀의 피부는 아주 멀쩡했다.

“자연에 조화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모든 건 생존 투쟁일 따름이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땅에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투자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고 찾아오더라는 샤오밍의 넋두리가 들리기라도 한 듯 블랙번과 근방의 땅은 활발히 매매되었다.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으나, 정부의 모든 결정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기에 사실상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관해서는 블랙번에 방문한 민간 역학 조사팀 중 하나에 참여한 생태학자 이소우 씨의 발언도 참고할 만하다.

“매매고 자시고 우선은 블랙번을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차적인 결론이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질병이나 힘도 무선으로 전송될 수는 없으니까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현상이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면 우선은 격리 조처를 하고 천천히 연구해 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공학 연구 윤리의 기본에 충실한 결정이지요. 게다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에 2년 동안 시달린 후였으니 정부가 그런 결론으로 한달음에 내달린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고요. 방치보다는 선제 통제가 낫다는 것이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겪으며 수신한 메시지였으니까요.

제 기억이 맞다면 반발보다 찬동 여론이 많았습니다. 코로나가 이 나라에 남긴 것은 다만 죽음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도 함께 남겼지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건 확실하기는 한데,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인천시에서는 협조에 미적지근할 뿐만 아니라 그 해변의 사람들을 쓰레기 매립지의 보상을 더 받아 내는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정부는 거기에 사람을 밀어 넣은 적도 없고, 보상해야 할 의무도 없으니 마찬가지로 적극적이지 않았죠. 정부로서는 방역을 철저하게 해서 이 사건이 커지지 않게 마무리하는 것 정도가 신경 쓰고 싶은 최대치였을 겁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질병관리본부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잘하든 못하든 항상 욕을 먹는데, 그 어떤 재난에도 가이드라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역학 조사팀을 보내기라도 했다는 점에서 질병관리본부는 많이 애썼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안타까운 점은 공정을 기하기 위해 보낸 열 팀에서 각기 다른 결론을 보내오는 바람에 그 어떤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특히 저희 팀 의견은 두루뭉술하다고 처음부터 반쯤 제외당했죠. 인간을 위한 방역이 아닌 것 같다고요. 하지만 모든 방역이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합니다. 박쥐들 사이에서나 퍼지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종간 경계를 돌파해 인간에게까지 퍼졌다는 괴담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아마존과 사하라 사막 같은 것입니다. 

예전부터 과학자들은 아마존 열대 우림에 관한 큰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마존 열대 우림의 토양에는 그만한 열대 우림이 존재할 만한 영양분, 특히 인(P) 성분이 부족했거든요. 나중에 위성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마존 열대 우림을 유지하고 있는 건 사하라 사막이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바람을 타고 건너간 모래가 아마존의 숲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블랙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로 최초의 사망자가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도 죽지 않는 동안 대중의 관심은 옅어졌고,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시험 시간이 끝난 후의 시험 문제처럼 시큰둥한 것이 된 후였다. 여전히 블랙번은 훌륭한 사진이 찍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전과 같은 활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복잡한 방역 절차와 블랙번 사태에 대한 거의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의 경고 보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AI의 발전 때문이었다. 블랙번의 사진을 학습한 AI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블랙번에 가지 않아도 블랙번에서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된 이후로 확실히 대중이 블랙번에 갖는 관심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블랙번에 사는 이들이 겪는 기이한 증상들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채다. 그러나 그 증상들이 블랙번 밖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이후로 블랙번 사태는 국가적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출세보다는 학문적 호기심을 중시하는 학자들이나 혁신을 꿈꾸는 야망가들. 혹은 미래의 또 다른 팬데믹을 걱정하는 이들만 블랙번을 연구한다. 물론 당연히 블랙번에 찾아가는 이들도 꾸준히 있다. 아름다움을 기대하든 해왕성인과의 교류를 기대하든 그저 호기심 때문이든 말이다.

한편 블랙번에 터를 잡은 이들은 그곳에서 작은 공동체를 형성해 나름대로 잘 살았다. 바깥 여론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블랙번 사람들은 비건강한 상태이기는 했을지언정 절대로 이성을 잃거나 미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훗날 그들이 이룩한 커뮤니티를 탐방하고 돌아온 연구자들은 블랙번 공동체의 생활 방식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이 마치 자기들이 블랙번의 일부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를테면 그들에겐 죽은 이들을 해변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경찰이나 119 구조대를 부르는 것이 적법한 절차니까. 하지만 그들은 마치 서로서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죽은 이들이 블랙번의 모래사장에 묻히기를 원하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소위 모래장을 처음 제안한 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버저비터는 커뮤니티에서 꽤 목소리가 컸다고 하는데, 그는 동상이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이었지 권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고 한다. 버저비터가 그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블랙번의 최초 발견자였고, 가장 먼저 죽은 사람도 그였으니 말이다. 버저비터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버저비터에게만 특별히 다른 대우를 한다거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 죽은 사람들도 정확히 버저비터와 같은 방식으로 묻혔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결국, 자본주의 바깥은 없더군요. 적어도 모든 인간은 거래하는 존재라는 측면에서는요.”

 전석재 씨는 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얼굴에 붕대를 덕지덕지 감고 있었는데, 막 새로 감은 것처럼 깨끗했다. 전석재 씨는 얼굴이 흘러내릴까 봐 신경이 쓰여서 집에서는 늘 붕대를 감고 생활한다고 했다.

 “그렇게 깔끔하게 욕망이 제거된 사람들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없어질 겁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블랙번의 마법인지 질병인지 모를 현상은 약해져 갔습니다.”

전석재 씨의 말에 따르면 나중에 블랙번에 온 사람 중에는 실망하고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앞선 정착민들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움과 기이한 힘이 그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인천광역시의 통계연감에 따르면 블랙번의 인구는 매년 빠르게 늘어 가고 있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의 유입이라기보다는 블랙번에 사는 이들이 낳은 아이들 덕분이었다.

 전석재 씨는 20번째로 죽은 오현우 씨를 해변에 묻은 후 블랙번에서 나왔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곳에 남아서 살고 있었고, 명백히 블랙번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는 그곳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건 그가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평생을 투자에 전념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외부 효과라는 개념에 관해 길게 설명했는데, 요약하자면 어떤 거래든 내부-당사자와 외부-비당사자가 존재하는 이상 거래에 기반한 의사 결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때 우리는 오직 햇살과 악취만을 원했으며, 스스로를 비료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집에서 북서쪽 42도 방향으로, 블랙번이 있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가 단지 그 자세를 선호해서 나온 시선에 불과한지 정말로 블랙번에 불가사의한 힘이 아직도 효과를 발휘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말을 멈춘 그는 그대로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잠시 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사업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