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 리포트

어떤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할지 예측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공 방정식을 후행 분석하는 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꽤 신뢰도 높은 결과를 제공한다. 성공한 콘텐츠는 반드시 유사한 후발 주자들을 낳기에 가중치에 기반한 군 분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 후행 분석이 통하지 않는 희귀한 케이스가 있는데, 버저비터의 영상이 그랬다. 그의 영상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 이외에는 아무런 소구점도 없는 아마추어적인 영상이었다. 그럼에도 소위 블랙번 영상들이 폭발적으로 증식한 것에 관해 가장 널리 퍼진 의견은 의외로 신비주의자들의 것이었다.

신비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블랙번으로 이끌리는 것이 해왕성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수신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우월한 과학 문명을 가진 해왕성인들이 지구를 품에 거두고자 하며, 그 수교의 선두에 블랙번 사람들이 설 것이라는 게 그들이 가진 믿음의 핵심이었다. 20세기 말에나 유행했을 법한 그 주장은 꽤 많은 지지자를 모았으며 그들 중 상당수가 직접 블랙번행을 택했다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널리 퍼진 믿음이었을 것이다.

가히 신드롬이라고도 부름직한 신비주의의 약진에는 블랙번에 머무르는 이들이 보이는 이상한 태도가 큰 힘을 발휘했을 거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블랙번에 사는 이들은 달관이나 초월 같은 말에 딱 어울리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 같았고, 옛 시가에서 찬양하듯 안분지족과 물아일체를 그대로 실현한 듯했다. 무엇보다도 검은 해변에 완벽히 어우러진 그들의 모습은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사람들은 그걸 지상낙원 같다고 표현했다. 그 말만큼 지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는 말이 또 있을까. 특히 집값이 몇 번째인지 모를 극적 상승을 하고, 소비자 물가가 미쳐 날뛰었으며, 남녀노소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고 있던 시기에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왕성에 발전된 문명이 있기는 한지, 그들이 지구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일부 신비주의자들은 미군이 해왕성에서 보낸 사자使者를 무력으로 억류하고 있다고 믿었다. 한미연합사령부 지하에 구금된 그 외계인을 구출하기 위한 시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모두 별 소득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목소리를 높이고 행진하는 것만으로 군대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인데, 놀랍게도 그 믿음은 다회용이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 너무 간단하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지적 회의론자들은 위와 같은 신비주의의 범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진리는 항상 단순함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다양성과 혼란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14세기 수도사의 말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건 과연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블랙번 사태에 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가지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단순하고 폭력적인 설명을 선호하는 건 육체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니 “인간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문제를 한 번에 숙고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므로 현대의 모든 문제는 체력 부족에서 발생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라는 chat-gpt-deepthought의 말에 따라 사마르칸트의 가설을 참고해 볼 수도 있겠다. 사마르칸트는 메타 영상 이론을 연구하는 AI로 블랙번 사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동영상 파일의 이름은 bb_blackburn.avif였다. 8K를 지원하는 해당 동영상 파일은 버저비터의 맥북 프로에서 출발해 광섬유를 따라 통신사의 구글 글로벌 캐시로 이동했다. 그 파일은 맥북 프로의 다른 소스 파일과 포인터들에게 bb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구글 글로벌 캐시에서는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리라. 그러나 bb 자신이 이를 알게 되는 일은 없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원본은 이동하지 않는다. 구글 글로벌 캐시로 이동한 bb는 bb가 아니라 복제된 bb다. 디지털 정보에는 복제와 삭제만이 있을 뿐, 이동은 없다.

대상이 그대로 이동하지 않고 복제되는 것이므로 디지털 파일에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내재한다. 생물학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핵산 복사를 떠올려 보라. DNA와 RNA에는 복제 실수를 대비하여 여분의 유전정보가 담겨 있지 않은가. 디지털 정보도 마찬가지다. 통신 과정에서 시스템은 일정한 단위로 데이터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하며 만약 오류가 있으면 데이터를 다시 요청한다. 컴퓨터가 믿음직스러운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 오류들이 전체 맥락 안에서 바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bb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블랙번을 찍은 영상이 무엇이 특별했기에?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bb_blackburn.avif를 비롯한 블랙번 영상들에서 발견되는 의미심장한 공통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초기 블랙번 영상들은 모두 ‘조회 수’에 의한 반응률보다 ‘트렌드’에 의한 반응률이 높았다. 이는 선제적으로 다량의 콘텐츠를 확보해 업로드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령 신인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여러 크리에이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리거나 할 때 말이다. 블랙번 영상은 최초 업로더인 버저비터가 홍보 계획 없이 제작한 것이므로 ‘트렌드’가 아니라 ‘조회 수’에 의한 반응률이 높았어야 한다.

이에 관한 합리적인 설명은 하나뿐이다. 블랙번을 촬영한 광학 데이터가 광범위한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 데이터 전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중에 임시 매립 오류라는 것이 있다. 전송받는 데이터가 중간에 바뀌는 경우 데이터를 수신하는 시스템은 어느 쪽이 옳은지 확인될 때까지 임시 사본을 만들어 하나의 파일을 두 개로 저장한다. 블랙번을 촬영한 영상이 만약 수많은 임시 매립 오류를 일으켰고, 그 오류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구글 글로벌 캐시는 수많은 bb_blackburn.avif를 받은 셈이 된다. 즉, 하나의 영상을 수백 개의 영상으로 오인했고 이에 따라 ‘유명하니까 유명한 것’ 효과가 자체적으로 발생했다. 그랬다고 한다면 ‘조회 수’가 아니라 ‘트렌드’에 의한 반응률이 높게 나타난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위 가설은 또한 bb_blackburn.avif와 블랙번 방문자들의 증언에 관해서도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한다. 최초 유포자인 버저비터는 bb_blackburn.avif의 용량이 확인할 때마다 달라졌다고 했는데, 임시 매립 오류가 발생하는 파일에서 이는 흔한 일이다. 또한, 블랙번 방문자들은 공통으로 “블랙번은 맨눈으로 볼 때보다 영상으로 보는 게 더 아름다웠다.”라고 증언했다. 블랙번 영상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디지털 오류로 인한 것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인간은 세상을 스캔하지 않는다.

물론 사마르칸트의 가설은 블랙번 사태 그 자체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블랙번 영상의 인기에만 주목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복잡한 수식을 편미분하여 단면이라도 살펴보는 정도의 의의는 충분히 있으리라.


bb_blackburn.avif는 버저비터의 영상 중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숏폼 콘텐츠의 특성은 하나가 성공하면 수많은 복제품이 순식간에 생겨난다는 점이다.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과 비슷해서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바이럴 탄다’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바이럴 타는’ 영상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콘텐츠 제작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 중 하나다. 버저비터의 블랙번 영상은 어쩌면 그를 그런 반열로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그가 블랙번의 위치에 관한 힌트를 제공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인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다라는 정보만으로도 수많은 영상 크리에이터들이 블랙번을 찾아냈다. 자기만의 비밀 무기를 드디어 발견했다며 만족스럽게 누워서 조회 수 통계를 보다가 잠든 버저비터는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고작 하루 만에 블랙번이 공공재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수많은 사람이 블랙번으로 몰려들었다. 사실 그 해변의 이름은 블랙번이 아니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통에 택시 기사부터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그곳을 블랙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버저비터의 구독자는 약 300퍼센트 증가했지만 그뿐이었다. 알고리즘은 다시는 그에게 미소 지어 주지 않았다. 한편 다른 이들이 블랙번에서 촬영한 영상은 얄미울 정도로 손쉽게 바이럴을 탔다. 곧 크리에이터가 아닌 사람들도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위해 블랙번을 찾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곳에서 소위 ‘인생 샷’을 건졌다. 한때는 쓰레기 매립지들 끝에 버려진 조그만 해변이었던 블랙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 제일가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모이면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블랙번의 유명세와 함께 해변에는 파라솔을 단 평상들이 나타나더니 곧이어 각종 음식을 파는 푸드 트럭들도 등장했다. 블랙번은 쓰레기로 넘쳐나기 시작했지만, 거기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악취는 더 심해질 여지도 없었고, 블랙번에서는 쓰레기조차 아름다운 사진을 만드는 오브제가 되었다.

임희지 씨는 그런 흐름에 따라 블랙번에 장사하러 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KF99 마스크가 불편해서 계속 코 받침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녀는 블랙번에서 타코야키를 팔아 그걸로 꽤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블랙번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블랙번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가 번거로워졌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임희지 씨는 설명했다.

블랙번에서의 자리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해변에서 가까울수록 장사가 잘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집이 가까운 임희지 씨는 처음엔 출퇴근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그렇게 해서는 절대 자리를 지킬 수 없으리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몰골이 초췌한 다른 상인들처럼 그녀 역시 그곳에 푸드 트럭을 세워 놓고 지내기 시작했다. 이 열풍이 오래 지속되면 나름의 질서가 생기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작은 자리라도 하나 잡아 두어야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터였다.

아무리 매력적인 관광지라고 해도 평일과 주말은 다르다. 관광지에서 푸드 트럭을 운영하는 상인 중에는 평일에는 다른 목에서 장사하고 주말에만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블랙번에서는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갔다. 아예 집에 돌아가지 않고 블랙번에만 머무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임희지 씨는 자리 잡기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결과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자기 트럭이 견인되어 가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건 종량제 봉투를 쓰레기 안에 넣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 아닌가.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은 사고지만 경향성이 보일 정도로 반복되면 그건 공식이 된다. 옆에서 핫도그를 팔던 남자가 푸드 트럭을 내버려둔 채 멍하니 해변을 떠돌아다니는 걸 본 임희지 씨는 드디어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다.

“여기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사이 얼굴이 구운 밀가루처럼 탄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임희지 씨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목이 좋으니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기는 했지만, 블랙번의 악취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코에 타코야키 소스를 들이붓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집이랄 만한 건물도 없었다. 그나마 가까이 사는 임희지 씨조차 차로 30분은 가야 하는 거리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도 종종 환경 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곤 했다.

처음에는 남자가 더위라도 먹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임희지 씨는 고작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남자의 얼굴은 단순히 탄 게 아니라 타코야키 반죽처럼 반쯤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연신 비틀거렸다. 그러면서도 병원에 가 보자는 임희지 씨의 말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서 살덩어리들이 후드득 떨어지는 걸 본 임희지 씨가 기겁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그는 터벅터벅 해변으로 걸어가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잿빛 파도만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임희지 씨는 틈날 때마다 해변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막상 해변을 계속 바라보면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예상한 것보다 더 기이한 현상이었다. 여태까지는 단지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늘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나와서 햇볕을 쬐었다. 잘은 몰라도 어떤 규칙성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관목이 되고 싶기라도 한 걸까. 여름이었는데도 임희지 씨는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함에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블랙번에 가지 않았다.


임희지 씨는 자기가 블랙번 사람들처럼 미치지 않은 것은 KF99 마스크를 하루도 빠짐없이 눌러 썼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후 역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랙번에서의 기묘한 현상은 호흡기 질환이 아니었다.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마스크 착용 여부와 블랙번에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인과관계도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스크를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더 위험하다는 경향성 분석마저 있었다. 가령 오현서 씨와 박정민 씨의 아들은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블랙번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현우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 아이에게 마스크와 콘돔을 꼭 챙기라고만 했어요.”

박정민 씨가 울먹이자 오현서 씨가 어깨를 토닥였다. 그들의 목에는 촬영을 위해 준비한 듯한 피켓이 걸려 있었다. 거기에는 정부가 블랙번에 갇힌 젊은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구호가 크고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블랙번으로 간 사람 중에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뉴스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나중에 공개된 중앙재난대책본부의 보고서에는 보도가 모방을 불러 트러블의 심각성을 키울 위험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잔뜩 예민해진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보고서였다. 블랙번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전염성이 있는지, 정확한 증상과 예후가 어떤지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본부는 그 시점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방역 조치를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에 타당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부부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실종 신고를 하고, 경찰을 원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찰이 남성, 특히 미필 남성의 실종에 유독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번 사태의 경우 경찰이 빠르게 대처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부부는 경찰이 아니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아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피부가 좀 누렇게 탄 것 같기는 했지만, 얼굴에는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들은 아주 잘생겨 보였고, 마찬가지로 누렇게 탄 다른 청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율동인지 춤인지 모를 동작을 해 댔다. 부부는 안심했으나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날마다 아들의 모습을 유튜브로 확인하던 부부는 아들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부가 눈에 띄게 주름지기 시작했고, 눈이 내시경으로 본 적 있는 내장 벽처럼 충혈되었으며, 버짐과 종양 따위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부부는 곧장 차를 타고 블랙번으로 향했다.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영상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악취가 부부의 코를 찔러 댔다.

블랙번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 빼곤 전부 막혀 있었다. 유일한 길을 따라가면 해변에서 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마주치게 된다. 펜스 앞에 선 경찰들은 부부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블랙번에 출입하는 사람은 누구든 한 달 동안 동선 역학 조사에 협조해야 하며, 꼭 KF99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부부가 경찰에게 악감정이 싹트지 않은 상태였다면 그들은 애써 지갑과 휴대전화를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개인정보를 허위로 입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거짓말이 블랙번 사태를 얼마나 키웠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평일인 데다가 번거로운 검문까지 있는데도 블랙번은 무척이나 북적였다. 다들 악취 때문인지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사진과 영상을 찍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해변이라기보다는 시장 바닥이나 포토 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온몸을 칭칭 싸맨 상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셀카봉과 마스크, 엄청난 크기의 비치 타월 따위를 팔았다. 부부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같은 의문을 읽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해변이라고 한들 이런 악취를 견디면서까지 머물러야 하나? 도대체 사진이 뭐라고?

부부는 한참 동안 해변을 뒤진 끝에 바다 앞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들을 찾아냈다. 아들의 상태는 영상으로 보던 것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 진짜 아들이 아니라 양초나 밀랍으로 대충 빚어 만든 무언가인 것 같았다. 감정이 복받친 오현서 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를 껴안았는데, 그 순간 부부는 왜 해변의 상인들이 나이트릴 장갑과 거대한 타월을 팔고 있는지 이해했다. 아들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들의 찐득한 피부가 오현서 씨의 옷에 묻어 나왔다. 그때 부부는 좀비라는 단어를 떠올렸으나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아들이 꼭 분해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어쨌든 부부는 아들을 끌고 집으로, 아니 병원으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아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블랙번이 자기 집이라고 했다.

“너 그러다가 죽어.”

박정민 씨가 반쯤 울다시피 애원했다.

“사람은 원래 죽어요.”

아들의 덤덤한 대답에 부부는 타일러 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해 보았으나 아들은 단호했다.

“이유라도 좀 알자.”

그때 박정민 씨는 거의 화를 내고 있었다. 젊고 창창한 아들이 왜 이런 냄새나는 곳에서 죽어 가야 하는지 박정민 씨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약, 환각제, 세뇌, 생체 실험 따위의 단어들이 전두엽을 때리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들은 마냥 평온하기만 했다.

“여긴 생명의 바닥이에요. 모든 것이 하나로 맞닿아 있죠.”

“아니, 넌 아픈 거야.”

박정민 씨는 아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박정민 씨는 그때 복잡하게 꼬인 매듭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풀려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들의 손목이 마치 찰흙처럼 쭉 늘어나는가 싶더니, 툭 떨어져 나갔다. 모래들이 움직여 순식간에 손을 집어삼켰다. 손목 관절인 듯한 작은 덩어리만이 박정민 씨의 손안에 남았다. 오현서 씨가 비명을 질렀다. 박정민 씨는 아들의 손을 찾아 땅을 팠지만, 손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아들은 멀뚱멀뚱 서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패닉은 지나간다. 잠시 후 오현서 씨와 박정민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아들 뒤에는 얼굴이 흘러내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거나 위협하지는 않았으나 숲처럼 서서 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동남아 출신인 듯한 외국인의 섬뜩한 얼굴을 부부는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는 거의 시체나 다름없었는데도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타르 같은 피부 사이로 새하얀 치아만이 단단하고 명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 사태를 구체적으로 명명하지도 않은 채 끝까지 트러블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맞습니까?”

오현서 씨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부부의 거실에는 TV 대신 아들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 하나만 걸려 있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도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사업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